[바코스토리]배민을 거절하고 바코를 시작하다 / 바닐라코딩, 그 시작

부트캠프 오리엔테이션에서 켄 님이 바닐라코딩을 시작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바닐라코딩에 관심 있으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하게 될 미래의 바코더들도

궁금한 주제일 것 같아 바닐라코딩이 시작된 일련의 과정들을 공유하려 합니다.

그럼, 바닐라코딩의 켄 님이 직접 전하는 바닐라코딩 부트캠프의 첫 시작, 그 히스토리를 함께 보세요!




Nike, Just Do It. 👍

 저는 바닐라코딩을 운영하고 있는 켄 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킨포크의 도시, 힙스터들의 성지, 미국 포틀랜드에서 Nike라는 회사에 근무했었습니다. Github과 Ebay에서도 입사 제안을 받았었지만, 저는 최종적으로 Nike를 선택하여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인생 최대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Nike는 근본적으로 의류, 신발 등의 제품들(Physical Product)에 기반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었고, 내부적으로 엔지니어링팀의 중요도는 제가 기대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었죠. 그리하여, 이런 이유로 저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Nike World Headquarters, Oregon. — By Carson, Brandon Flickr,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2974841

* Nike World Headquarters, Oregon. — By Carson, Brandon Flickr, CC BY 2.0



Working from home. 🏡

 Nike에서 퇴사한 이후, 저는 더욱 주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업무가 진행되는 소규모 스타트업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AndCo라는 작은 스타트업 회사(현재는 Fiverr에 인수)에 합류하게 되었죠. 이곳은 스페인, 아르헨티나, 미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이 재택 체제로 근무하는 회사였습니다. 이런 근무 형태는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당시 1년 365일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하는 재택 근무라는 형태가 흔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경험이 저에게도 많이 새로웠습니다. 물론 제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근무 위치로부터 자유로워지다 보니, 저는 점점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 Team Photoshoot at AndCo 📸 (저는 어디있을까요?)



Long time no see, Korea. 🇰🇷

 AndCo와 함께하며 전 세계 어디에서 근무해도 관계가 없었기에, 어린 시절 떠났던 한국에서 다시 한번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휴가차 1, 2개월 정도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던 경험은 꽤 있었지만, 장기간 한국에 머물 기회는 고등학생 시절 이후 없었기에 한국에 가서 당분간 지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결심하면 IIFE(즉시실행함수)처럼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기에, 미국에 있는 집과 짐을 애자일(Agile)하게 정리하고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티켓 없이 한국행 편도 티켓을 샀는데, 지금까지도 저는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지 못했네요..) 한국에 입국한 그날은 제가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제게는 새로운 곳에서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되는 듯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제 기대만큼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 It was meant to be temporary.. 😅



A Coding Bootcamp in Korea. 🧑‍💻

 한국에 온 이후, 저는 제가 일하던 회사의 Core working hour를 지키기 위해 한국 시각으로 저녁 10시에 출근하고 새벽 5시에 퇴근하는 삶을 보내야 했습니다. 집에서는 근무 환경 조성이 잘되지 않아 공유 업무 공간을 찾아보게 되었고, 당시 역삼역 부근에 있던 피치트리라는 공유 오피스에서 매일 밤을 보냈었죠.


* Peachtree Coworking Space ☘️


 매일 밤새워 일하는 환경은 체력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꽤 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출근하고, 새벽에 첫 차를 타고 퇴근하는 것은 저를 슬프게 만들더군요. 일 자체는 너무 재미있었으나, 한국에 살아도 한국에 살고 있는 느낌은 아니었고 어느 곳에도 속했다는 소속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통해, “아, 나도 인간이구나. 나도 사회적 동물이었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저를 찾아온 분이 계셨죠.

 그분과 제가 일하던 공유 오피스 근처의 곱창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고, 두 명의 털이 많은 남성들이 가운데 커다란 불판을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그분은 제게, 본인이 한국에 코딩 부트캠프를 창업하여 시작하려고 한다며, 제게 부트캠프 멘토로서의 역할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죠. 하지만, 그 당시 저는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것 외에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단칼에 거절했고 그분은 더 이상 곱창을 주문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제가 너무 단호박처럼 거절해서 섭섭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Hello, I am your mentor. 🕺

 한 달 후, 제게 연락하셨던 그 분께서 부트캠프 1기가 시작했다며 사무실에 한번 놀러 오라고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저는 궁금한 마음에 구경을 가보기로 했죠. 제가 좋아하는 김밥을 한 줄을 사서 방문했고, 작업 공간에는 11명 가량의 수강생들이 열심히 코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수년 전에 제가 부트캠프 다니던 그 시절이 생각나더군요. 오타 하나 때문에 몇 시간을 헤매던 기억, 많지도 않던 코드인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쩔쩔매던 기억, 그리고 내가 쓴 코드인데 왜 제대로 동작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던 기억까지.. 옆에서 30분 정도 지켜보자니 정말 많이 답답했습니다. 당장 달려가서 참견하고 싶고, 잔소리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죠.


* Office space of the coding bootcamp 🖥


 다양한 감정과 감수성이 풍부해진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 운영진 분께서 저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주셨습니다. “저희 부트캠프에 멘토로 참여하시는 건 아직 생각 없으신 거예요?” 제가 인생을 살면서 EDD(Emotion Driven Decision)을 했던 순간들이 몇 번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중 한 번이 이 순간 이었던 것 같네요. “제가 여기서 도움이 될까요?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한데..” 저 질문을 한 순간, 저는 이미 유혹에 넘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때 당시 저는 월 2,0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던 미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버리고, 작은 코딩 부트캠프에서 월 150만 원의 월급을 받는 파트타임 계약직 직원이 되었습니다. (미국 국적이라 국내 보험도 안되는데.. 4대 보험도 안 되는 파트타임 계약직이라니..) 저는 수학과 출신으로서 멱등성이 보장되는 순수 함수의 성질을 좋아하는데, 이후 저의 삶은 그와 반대로 매우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게 됩니다.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만,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귀국한 이후 제 인생은 계획과 달라도 너무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저는 국내의 한 부트캠프에서 파트타임 계약직으로 멘토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퇴근 시간 후, 사무실에는 부트캠프 수강생들만 남아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수강생들만 두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평정심을 좀처럼 잃지 않는 저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집에 간 사이 자바인지 자바스크립트인지 아니면 자바칩 프라푸치노인지 알 수 없는 창의적인 코드를 작성하고 자기들끼리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제가 돌아오면 꾸덕꾸덕한 짜파게티 같은 코드를 저에게 들이밀 것이 뻔했죠. 그래서 저는 Event Driven Programming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하여 모든 수강생이 귀가하는 이벤트에 대한 리스너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Observer처럼 지켜보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퇴근했죠. 저의 메모리가 조금 낭비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당시 제게는 효율보다 기능 구현이 우선이었습니다. 

 “부트캠프 초반 하루 이틀만 조금 더 신경 써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월급 150만 원에 월화수목금금금 출근하고 매일 밤 새벽까지 일하며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이 걱정되긴 했지만 하루에 김밥 두세 줄만 먹으면 되니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었고요. 하지만, 정말 큰 사건은 그 이후에 발생했죠.



I lost my job. 💔

매일 수강생들과 밤늦게까지 함께 지내다 보니, 사회성이 부족한 저의 소프트웨어도 업데이트되어 단기간에 사람들과 아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한국 사회의 SOLID 한 instance가 된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부트캠프 1기가 중반으로 접어들었고, 한 수강생이 저에게 묻길, “켄 님, 여기 부트캠프 문 닫는다는데 정말인가요?” 저는 답했죠. “그게 무슨 소리죠… 동기들이랑 그런 이야기 할 시간에 코딩이나 하세요.” 그런데, 며칠 후 부트캠프가 진짜 폐업하고 문을 닫게 되었고, 한 달도 일하지 못한 저는 1,137,810원의 급여를 이체받았습니다.


* (-┏)TL my bank account balance 🥲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제 일자리가 없어진 건 전혀 관계없었습니다. 어차피 길게 할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개발자라는 직업의 좋은 점은, 회사와 내 커리어 간 관계 결합도가 낮다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1,000만원 수준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인생의 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수강생들에게는 인생 최대의 위기 상황이었죠.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운영하던 기관이 폐업할 것이라고 그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어떻게든 학습을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수강생들은 삼성역 부근에 모여, 계속해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정진했습니다.그 당시,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저도 매일같이 나가 잔소리를 마음껏 하고 미국으로 가기 위해 일자리를 조사하곤 했죠. (저는 특기가 잔소리, 취미도 잔소리, 일상도 잔소리입니다. 삶에 유용한 재능을 물려주신 저희 어머니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그러던 와중, 6명의 수강생이 저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켄 님, 저희가 이제 취업할 때 포트폴리오로 쓸만한 프로젝트를 하나 해야 할 것 같은데 

저희 프로젝트 진행하는 거 리드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말했죠.

“저는 이제 미국 갈 준비 해야 해서 안돼요.”


며칠 후, 그 6명의 수강생들이 다시 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돈도 드릴게요. 해주세요, 제발. 🥺”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제가 무슨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아요!?”

“… 근데 얼마요?”


 당시 제 한국 통장 잔액도 보셨겠지만, 저도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수강생 1인당 70만 원의 비용을 받고 5주간 함께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절반의 비용은 장소가 필요했던 수강생들을 위해 사용하긴 했지만,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수입이었습니다. 타고난 꼰대처럼 사람들을 붙잡아 두고 밤새워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저는 그때부터 5주 동안 6명의 수강생과 또다시 매일 밤을 지새우게 되었죠.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5주 후 저희는 나름대로 그럴듯해 보이는 팀 프로젝트를 하나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 Working on our project. Someone is sleeping. 🧐


 교육 경험이 없었던 저는 모든 것을 현업의 기준에 맞춰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수강생들의 상태가 더욱 부족해 보이고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처럼 느껴져서 아주 걱정스러웠죠. 저희 어머니께서 일자리를 잃은 삼십 대 중반의 털보 큰아들이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새벽녘까지 무얼 하고 다니는지 의문스러워하신 만큼, 저도 이 사람들이 과연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We are ready to explore the world. 🌏

 프로젝트를 마치고, 이력서를 준비까지 준비한 후 채용 플랫폼을 통해 여러 기업에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코드도 처참 했지만, 구직 활동의 초반 결과는 더욱 처참했죠. 인터뷰 기회는커녕, 서류 통과도 쉽지 않았고 몇 번 되지 않는 소중한 인터뷰 기회조차 부족한 준비 탓에 탈락하기 일쑤였습니다. 우리가 약속한 프로젝트 계약 기간은 끝났지만, 저의 모든 생각은 여전히 그분들의 취업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모두를 취업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제 영혼까지 지배하게 되었죠. 구직을 돕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 하는지 잘 알아야 디버깅이 수월한데, 저는 국내 채용 시스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한 번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저는 저의 이력서를 작성하게 되었고 채용 플랫폼을 통해 직접 여러 기업에 지원하게 되었죠. 당시 15~20개 정도 기업에 지원해 대부분 서류 통과가 되어 꽤 많은 인터뷰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국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 시스템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부분들을 중요하게 보는지 짧게나마 체험할 수 있었죠. 그 결과, 구직활동을 도와주는 처지인 저에게 필요한 정보와 자신감이 생겼고 구직 상황은 점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매우 iterative 하게 개선점을 찾아 나가며 한 2개월쯤 시간이 흘렀을까, 결과적으로 모든 인원이 취업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취업 소식을 전해 들었던 순간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저녁에 오퍼 레터를 받자마자 제게 전화해서 취업했다고 고맙다고 울보처럼 울던 한 수강생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알만한 유니콘 서비스 팀에서 프론트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일하고 있는가 하면, 당시 30대 중후반의 나이를 걱정하던 또 다른 수강생은 현재 꽤 유명하고 탄탄한 스타트업에서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고, 위에 첨부했던 사진 속 꾸벅꾸벅 졸고 있던 수강생은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서 억대 연봉과 함께 영주권을 받아 커리어를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덧 모두 업계에서 예쁨 받는 중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 Is everyone doing well? 🌸



Myself as a software engineer in Korea. 🇰🇷

 그리고 다시 저의 이야기로 돌아와, 수강생들을 돕는 과정에서 채용 절차를 진행했던 한 회사가 저의 이목을 끌었죠. 한국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험이 없었던 저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솟구쳤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장 꽤나 번거롭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서 아직 제대로 된 경험다운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에, 저 또한 국내 취업을 결정하게 되었죠.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한국 회사의 꼰대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 것인지가 저의 주된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회사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즉, 좋지도 않았다는 뜻이죠. 일의 난이도가 높지 않았고, 기술적인 챌린지도 거의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꽤 지루했죠. 일을 만들어서라도 제 업무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의도치 않은 부업이 생겼습니다. 기존에 취업을 도와 드렸던 분들과의 인연을 계기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개받은 분들과 개인 과외를 하게 되었죠. 매일 퇴근하면 코워킹 스페이스로 출근하여 과외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도 과외 학생들을 가르치고.. 제가 하던 과외는 무료였기에 제게 아무런 경제적 이득은 없었지만, 경제적 이득의 유무는 당시 저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재미있었습니다. (오전에 출근해서 회사 업무를 보고, 퇴근해서 과외를 하고, 신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된 기존 수료생들 고민 상담을 하고, 귀가해서 수면하고, 오전에 출근해서 회사 업무를 보고, 퇴근해서 과외를 하고, 신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된 기존 수료생들 고민 상담을 하고, 귀가해서 수면하고, 오전에 출근해서…) 저는 재귀스럽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슈가 있었죠.

 첫 번째로, 근무하던 회사의 환경이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챌린지가 부족했던 것도 있었지만, 근무 환경에 제가 제어할 수 없는 이슈들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공유드릴 수는 없지만, 회사 운영진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한국의 모든 회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단 당시 제 선택은 실수라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는, DRY하지 못한 개인 과외였습니다. 한 학생의 과외가 끝나면, 바로 이어서 저는 다음 학생과 같은 말을 또 반복했습니다. 여러 명을 과외하다 보니, 저는 동물원에서 훈련받는 앵무새보다 더욱 혹독하게 반복되는 구절들을 읊게 되더군요.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공유하고 그 사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굉장한 희열을 느꼈지만, 너무나도 반복적인 저의 모습은 저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주된 요인이었죠. 수학과 출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답게 저는 이런 이슈들에 대해 어떻게 개선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습니다.



Woowahan brothers. 🍱

 회사 환경은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되어,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희망하던 최우선 옵션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돕고 있던 코딩 유망주들이 많아서 제 인생이지만 제가 함부로 출국을 결정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아한 형제들 측과 인연이 닿아 운 좋게도 입사 제안을 받았고, 한국 회사에 대한 기대는 사실 거의 없었습니다만 아직은 조금 더 경험해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우아한 형제들 입사를 결정했습니다.


* 우아한 형제들 면접에서 받은 굿즈와 면접 대기 중에 찍은 올림픽 공원

 반면, 반복적인 과외 활동은 제가 제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죠. 여러 명의 수강생들을 묶어 React의 상태 업데이트처럼 Batching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업의 형식을 취해, 기존에 과외를 진행하며 늘 고민거리였던 반복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려고 했습니다. 기존 개인 과외처럼 무료로 계속 진행하기는 부담이 되어, 최소한의 수강료를 책정했고 인터넷을 통해 추가 수강생을 모집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수강생이 생각보다 많이 모집되어 심적 부담이 커졌죠.

결국, 우아한 형제들 입사를 앞둔 휴식기 기간에 정작 제대로 쉬지는 못하고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며 수업 자료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수업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너무 노동 집약적이었죠.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해서 초심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당시 교육 경험이 많지 않았던 저에게 듣는 사람을 배려한 콘텐츠 제작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미 수강료를 지불한 수강생들의 이름들이 하루 종일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요..

 우아한 형제들 입사  vs 코딩을 배우고자 찾아오신 분들에 대한 교육 , 제가 진행하기로 계획한 이 두 가지 사항에 대해 다시 한번 심도 있게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아한 형제들 입사를 취소하기로 했죠. 우아한 형제들과 같은 기회는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성취할 수 있는 저의 개인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지만, 저에게 배우고자 수강료를 지불한 수강생들은 제 개인적인 목표가 아니라 수강생의 인생 목표가 달려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목표보다 배우고자 하는 수강생들의 목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느껴졌고, 대단한 내용을 알려드리는 건 아니었지만, 책임감이 막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017년 7월 31일 월요일, 곰팡이 냄새가 나는 언주 역 부근 지하실에서 바닐라코딩 1기 첫 수업을 드디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Why did I name Vanilla Coding?

 수강생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셨고 전체 수강료가 제 예상을 뛰어넘는 큰 금액이라 나라에 세금을 내야 하지 않나 하는 걱정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업자를 내게 되었죠. 사업자 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하나 매우 고민스럽더군요. 작명이 이렇게나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교육을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저의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내가 코딩 부트캠프를 선택했던 3가지 이유] 글 보러가기

 대부분의 부트캠프가 그렇지만, 제가 다녔던 부트캠프 또한 현업에서 사용하는 툴에 과하게 집중된 커리큘럼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을 하면서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었죠. 유행은 변하기 나름인데, 유행에 대처하는 힘을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근본적인 코어를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저는 제 커리어를 만들어 나아갔고 이런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닐라(기본)가 중요하다.”라는 의미를 두어, “바닐라코딩”이라 이름 짓게 되었습니다.


* 한땀 한땀 내가 그린 바닐라코딩 초창기 로고. ✍🏻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바닐라코딩은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100% 취업률, 기본기를 가장 강조하는 커리큘럼, 가장 섬세하고 체계적인 멘토링, 수준 높고 활발한 수료생 네트워크 등 1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 있습니다. 커리어를 전환하려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확률은 매우 중요하죠. 그런 측면에서 저희는 최고의 가치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진정 남다른 부분은 그 시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합니다. 의도에 의해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기 때문이죠. 10년 전의 나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바닐라코딩의 시작 되었듯, 늘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책임감 있게 임하는 것이 우리의 특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닐라코딩을 운영하는 켄 님이 직접 전하는 바닐라코딩의 첫 시작, 어떠셨나요? 

부트캠프 수강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걱정하면서 함께하는 켄 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에서 바닐라코딩 만의 차별점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요. 

바닐라코딩의 특별함을 알아본 많은 분들이 바닐라코딩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더 많은 분들이 바닐라코딩의 특별함을 알게 되기까지 다음 바닐라코딩 만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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